대학 기술지주의 입지전적 인물인 목승환 대표는 투자할 때 수익성 외에 ‘사회적 부가가치’를 본다고 말한다. 그것이 필요하고, 또 전략적으로도 결국 이기는 법이라고 그는 본다.
진행 박형진 브리즘 대표, 글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목승환 서울대기술지주 대표 서울대 재료공학부 졸.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 입사, 2009년엔 앱 개발사 ‘나무앤’을 창업, 2016년 더벤처스에 매각했다. 2016년 서울대기술지주에 합류했다.
지난 12월, 한국에 간만에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이 나왔다. AI반도체 개발 기업 리벨리온은 동종 업계 기업 사피온코리아와 합병하면서 약 1조 3천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리벨리온을 발굴하고 초기 투자했던 목승환 서울대기술지주 대표는 “잘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리벨리온의 창업 멤버가 그만큼 좋았다. 목 대표는 “미국에서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웠다. CEO는 인텔과 스페이스X를, CTO는 IBM을 거쳤다.
서울대기술지주는 리벨리온을 비롯, 트래블월렛, 루센트블록, 어레이, 그리고 브리즘 같은 기술 스타트업 200여 곳을 포트폴리오로 갖고 있다. 이름처럼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지분 100%를 지니고 있다. 2008년 출범한 뒤 12개 펀드를 조성하고, 현재 약 1200억 원을 운용하고 있다.
이름 덕에 손쉽게 쌓아 올렸을 성과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목 대표가 이곳 팀장으로 부임한 2016년, 운용 펀드는 하나도 없었다. 수익이 없어 매번 모교에 손을 벌려야 했던 상황. 그는 서울대 근처에 원룸을 잡고 펀드를 하나둘 늘려갔다고 돌이켰다. 마음이 뒤숭숭할 때면 서울대 정문 근처 강감찬 사당(낙성대공원)에서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성과 덕분에 지난 2020년, 내부 승진 인사로는 처음으로 대표직을 맡았다. 전체 기술지주를 둘러봐도 전문 최고경영자(CEO)를 두는 경우는 드물다고 그는 부연했다.
목 대표는 여전히 ‘워커홀릭’이다. 한 주에도 두세 번 해외를 나가는 일이 흔하다. 중압감 탓에 그는 “대표를 맡고 난 뒤로는 사람 많은 곳을 잘 못 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신 넷플릭스 시리즈와 아이돌 신곡을 섭렵하는 그지만, “비행기 타는 내내 잠을 못 자는” 속사정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밌다”고 말했다. “사회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투자를 결정할 때도 기업의 사회적 파급력을 함께 본다고 그는 설명했다.
목승환 대표는 한 주 동안에도 한국과 싱가포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오가곤 했다. 에너지를 쏟아내기 바쁜 그에게 비행기 안 시간은 ‘축적의 시간’일 때가 많다. [사진=최근우]
Q 최근 일정을 되짚어보자면.
2주 전부터 볼까요. 수요일 일본 나고야에 갔다가 목요일 아침에 귀국해서 서울대 평창 캠퍼스에 직원들과 가서 행사했어요. 토요일은 고객들과 미팅하고, 일요일에 다시 싱가포르로 나갔습니다. 월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다음 날 아침에 한국에 왔다가, 6시간 뒤에 이번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그리고 금요일에 귀국했죠.
한곳에 오래 있기 어려워요. 서울대기술지주 포트폴리오가 거의 200곳입니다. 주주 동의가 필요한 일부터 투자한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가 많아요. 예를 들어 10월 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거기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했어요. 제가 거기서 다른 투자사들을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죠. 일본과도 일을 많이 해요. 도쿄대기술지주 대표와 교류를 많이 하고, 직접 투자도 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베트남에도 투자하고 있고요. 유럽향 기업도 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창업 열기가 높아요. 스페인도 MWC 때문에 연 1회는 가고요.
제가 없으면 다른 직원에게 위임해야 하는데, 그러면 직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게 돼요.
Q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스스로 소진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말씀대로 제가 갖고 있던 걸 소진해 간 느낌이 들었어요. 다시 채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읽고 있어요. 1년에 50권을 목표로 합니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 펜실베이니아대 조직심리학) 교수의 책을 좋아해요. 《씽크 어게인》을 재밌게 봤고, 지금은 신작 《히든 포텐셜》을 읽고 있어요. 경영학자 톰 피터스(Tom Peters)의 책 《탁월한 기업의 조건》도 좋았고요. 《도요타 EV 전쟁》이라는 책도 봤습니다. 전기차 시장을 더 알고 싶어서요.
아침에 일어나서 10~30분간 읽어요. 명상하고, 조금이라도 책을 보려고 해요.
Q 사업도 하고, 엑시트도 했습니다. VC에도 있었고요. 왜 학교로 갔습니까?
이제 곧 만 8년이네요. 2016년 12월 19일 입사했어요. 팀장으로 들어왔죠. 더벤처스를 나왔을 무렵, 주변에서 좋은 제안들을 해주셨어요. 지금 손꼽는 비상장 기업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 서울대기술지주에서 제안이 왔어요. 당시 대표가 재료공학부의 박종래 교수님이었어요. 펀드를 만들고 제대로 투자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게 제안이 왔습니다.
제안이 운명처럼 제게 다가왔어요. 하고 싶다. 제가 사업할 때도 사회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일을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맡게 됐어요. 연봉은 민간 기업의 3분의 1 정도였어요.
Q 사회적 부가가치라면?
해외 유수의 대학들은 투자기관을 잘 키워서 경쟁력을 만들어요. 예일대, 하버드대 같은 곳은 수십 조원씩 기금을 운용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하지 못할까. 그 당시 대학에서 만든 벤처펀드가 하나도 없었어요.
첫 펀드를 만들 때 학교에서 일주일을 꼬박 보냈습니다. 집이 일산이었어요. 도저히 출퇴근은 안 되겠더라고요. 아내에게 ‘딱 3년만 있을게’ 약속하고 원룸을 잡았어요. 주말부부를 하기로 했는데, 주말에도 집에 못 간 적이 많아요.
게다가 펀드를 제가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었거든요. 처음엔 엄두가 안 났죠. 그때 찾아갔던 곳이 강감찬 사당이었어요. 12월 19일 처음 출근했는데 팀원 없는 팀장이었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서울대 후문에서부터 걸어 내려가는데, 사당을 발견했어요. 기도를 오랜 시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2017년 8월에 첫 펀드를 만듭니다.
Q 생각의 뿌리가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행복해했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제가 재미를 느끼거든요. 제가 착해서 그런 건 아니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투자가 잘 맞아요.
Q 기업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적절한 수단일까요?
애덤 그랜트 교수가 《기브 앤 테이크》(2013)라는 책에서 사람을 세 가지로 분류해요. 기버(giver)와 매처(matcher), 그리고 테이커(taker)인데요. 기버는 대가 없이 남을 돕는 사람이에요. 매처는 받는 만큼 주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테이커는 타인의 필요보단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분이 몇 년간 연구했더니, 어떤 집단이든 최상단엔 기버가 많더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힘들어도요. 결국 어떤 집단이든 협력해야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남을 돕는 게 처음은 힘들어도 결국 본인에게도 이득이라는 걸 학술적으로 설명해 주신 거죠. 그 책을 읽고 기분이 참 좋았어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아.’
VC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두 가지를 봐요. 이 기업이 스케일업 할 수 있냐, 그리고 우리는 언제 엑시트할 수 있냐. 그런데 저는 한 가지를 더 봐요. 이 기업이 정말 사회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수 있느냐. 이걸 보는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최근에 더 많이 느낍니다.
Q ‘공공’이 꼭 국가는 아닐 텐데.
대한민국은 지금 패러다임 전환기에 있어요. 제가 태어났던 78년 1인당 국민소득이 1400달러였는데, 지금은 3만 5천 달러예요. 대한민국이 빈곤할 때 태어난 분들, 개발도상국일 때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선진국 직전에 태어난 사람들인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거예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소통은 거의 단절돼 있죠.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져 있어요. 과거와 현재가 조율되지 않고 난립해요. K팝과 트로트만 그런 게 아니라, 정치와 경제도 그래요.
(이런 단절을 조율할 수 있는) 다음 패러다임을 찾을 때 대학과 스타트업의 역할이 크다고 봐요. 제가 투자할 때도 이런 부분에 집중해요.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일진 많은 시도 끝에 알게 되겠죠.
이 기업이 정말 사회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수 있느냐. 이걸 보는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최근에 더 많이 느낍니다.
Q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찾기 위한 시도를 유도해야 한다.
브리즘도 좋은 사례예요. 정체해 있던 안경 산업을 바꾸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되고, 주류로 커져야 해요. 그걸 하려면 돈도 필요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늘려야 하겠죠. 그래서 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고요.
예전에는 경제 관료들이 모여서 포항에는 제철소를 짓고, 거제에는 조선소를 짓고, 대기업은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면 된다는 식으로 결정했죠.
지금은 달라요. 파괴적인 혁신이 계속 올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미 한 번 경험했죠. 앞으로 올 혁신에 잘 대응하려면, 우리가 실험을 많이 해봐야 해요. 그러려면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고요. 대기업 위주의 패러다임으로는 대응할 수 없어요.
Q 대기업 위주의 패러다임이란?
과거 한국이 빈곤을 돌파하기 위해 대기업을 선별적으로 키워주는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니 대기업은 테이커였죠. 저보다 위 세대, 번영을 일군 분들은 생존 본능이 상당히 강하세요. 그래서 테이커로 살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국력이 커지고 문화가 융성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신뢰가 쌓이지 않았어요. 이제 기버가 득세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버의 문화를 젊은 창업자들이 가지고 와서 실천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포춘 500대 기업에서 한국 기업이 15~20곳 되잖아요. 4%거든요. 그런데 글로벌 유니콘기업에서 한국 비중은 0.8%예요. 아직 우리 노력이 부족한 거예요. 스타트업을 키우는 데 국가적으로 역량을 더 투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새로운 기업을 찾아내는 대학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대학의 시대적 소명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최고의 학문 기관이었죠. 그런데 연구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다시 창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창업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해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기술지주이고요. 그렇다면 기술지주가 제 역할을 해야 한국 대학이 상위권에 오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국내를 넘어서 동남아시아의 유력 대학과 대학 내 기업에 투자해서 인재를 유치하고요. 함께 기술 개발을 할 수도 있겠죠.
Q 실제로 동남아 창업자들이 서울대와 뭔가 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입니까?
호찌민대 부총장님, 우리로 말하면 창업지원단장과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 대학 출신 소프트웨어 회사에도 투자한 적 있어요. 새우 양식하는 스마트팜 기업에도 투자한 적도 있고. 다만 투자가 쉽지는 않아요. 시장은 크고 있지만 자본 시장이 성숙하지는 않았거든요. 여러 이슈가 있어요. 저희 입장에선 의미가 있어요. 대한민국의 혁신적인 역량에 대해서 알릴 수 있으니까요.
Q 트렌드가 있을 때 혹자는 ‘잘못된 트렌드이니까 막아야 해’라고 합니다. 의대 인기가 그중 하나일 텐데, 막는다고 막아질까요?
맞는 말씀이에요. 공대 친구는 그 친구대로 잘 살게 하면 되고요, 의대도 마찬가지예요. (의대를 나와도) 다양한 형태로 잘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주는 것, 기회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죠. ‘의대 가지 마’ 이건 입체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대 친구들 창업에 관심 많습니다. 전 교원 창업의 승인 업무를 맡는 창업심의의원회 위원을 해 왔습니다. 서울대병원의 출자회사관리위원회에서 유일하게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매해 디캠프, 서울대 의대가 함께 여는 데모데이 행사에도 후원해 왔습니다.
Q 보통 대학의 기술지주는 그 학교 출신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그런데 브리즘은 서울대 출신이 없어요. 20대 창업자에게 투자하기도 하고요.
스타트업이 잘 되려면 다양성이 중요하거든요. 서울대 출신이 없는 회사라면 저희가 투자해서 서울대의 인프라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거죠. 서울대의 색깔을 입혔을 때 그 회사가 더 잘 될 수 있느냐. 이게 우리의 투자 관점이에요. 그게 없이 수익만 보진 않아요. 또 중요한 건 회사가 잘 되게 하는 거지, 서울대 동문을 지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역할에선 다소간 비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왼쪽)과 목승환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목 대표는 지난해 12월 서울대 창업지원단에 ‘목승환 창업지원 기금’을 기부했다. [사진=서울대]
Q 매해 학교에 기부합니다. (※목 대표는 지난 12월 서울대 창업지원단에 ‘목승환 창업지원 기금’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많이 할 거예요. 이번에도 성과급을 기부했고요. 서울대기술지주를 외부에서 볼 때 손색이 없는, 지금보다 더 큰 투자사로 키울 거고요. 그러려면 좋은 인재들이 필요하죠. 좋은 인재들이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내는 게 제 역할이죠. 대학과 상생하는 방안도 계속 고민하고요.
“저는 대한민국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서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스쳐 갔다. 박 대표는 지난 4월 포춘코리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 하나 만들자’가 미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 벌고 싶다’가 아니라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스스로를 지칭할 때 ‘국내’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고집하는 것도 닮았다. 목 대표가 리벨리온을 일찌감치 발굴한 건 필연일지 몰랐다.